유투버들이 이런 심정인가, 이 블로그를 몇 명이나 보겠냐만은, 제목만 보면 세르비아에서 비올라 유학을 한 사람의 후기인 것 같지 않은가. 내가 이렇게 제목을 잡은 이유는, 응? 이 사람 비올라 유학한 사람이었어? 하고 의아해할 독자들을 골탕 먹이고 싶은 장난기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직업이 따로 있고 비올라 교습을 받는, 아니 받았던 아저씨다. 하도 많이 이야기해서 지겹지만 지금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교습을 받지 않은지 한 달이 지났다. 세르비아 오기 전에 3개월 정도 비올라 교습을 받았었다. 더 늙기 전에 내 인생을 풍만하게 만들 수 있는 악기를 배우고 싶었고, 클래식 악기를 다루고 싶었다. 첼로를 시작하고 싶었으나 이동 제약이 너무 컸고, 바이올린의 높은음은 내 성격상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적당히 비올라로 타협했다. 비올라 연주자는 희소해서 나중에 오케스트라 동호회에서도 예쁨 받을 것이라는 팁이 주요하게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인생을 풍만, 풍족하게 만들기 위한 선택 조차 이런 요소를 염두한다는 게 참 나도 나다 싶다.
어쨋든 세르비아에 오자마자 비올라 개인교습을 해줄 선생님을 수소문했고, 지난 2월 한 달 정도 교습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아주 만족하고 있고, 얼른 이 암흑의 시간이 지나 교습이 다시 시작되길 바랄 뿐이다. 잊기 전에, 지난 2월에 비올라를 시작했던 과정을 기록해 본다.
1. 2020.2.10
"방금 통화했는데 뭔가 잘 될 것 같아. 전화통화만 했지만 그녀가 얼마나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사람인지 느껴져. 게다가 최근에 한국에 출장을 다녀왔다는데 한국에 대한 인상이 매우 좋은가 봐. 문화교환이 될 좋은 기회 같아. 이번 주 일요일에 만나자는데 내가 같이 가줄까?"
내가 유모처럼 의지하는 현지 동료가 지난 목요일 내 비올라 선생님을 찾았다면서 신이나서 이야기했다. 놀랍게도 세르비아는 매우 가난했던 시절부터 공립기관에서 무료로 악기 연주 교육을 제공했고, 약 70% 인구가 악기 하나쯤은 취미 정도로 다룬다고 한다. (공식 통계가 있는 것은 아니고 전해 들은 이야기다) 그렇게 이 곳에 온 지 2주 만에 처음 선생님을 만났고, 나랑 동갑이면서 열정적인 선생님과 한 번의 면담만에 수업을 결정했다. 한 번의 면담이라고는 하지만 그 한 번이 꽤 intensive 했다. 11시 즈음에 만난 선생님은 세르비아의 교육체계와 자신의 관심분야(대안 음악, 채식, 명상), 자신의 커리어,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세르비아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했고, 처음 만남에 2시간 정도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결국 다음 주부터 레슨을 하기로 했다. 처음 만남에 두 시간 동안 대화라니. 물론 나의 유모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신기한 경험이었다. 특히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삶에 있어 중요한지 설명하는 그녀의 모습에 살짝 부담도 되었지만 기본적인 생각에는 동의했기에 그녀의 열정에 조금 따라가기로 했다.
더구나 파견 기간 동안 가능한 많이 클래식, 발레, 오페라, 라이브 재즈 공연을 보려고 했던 계획에 맞게 여러 공연을 소개해 줬다. 비올라 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뉴에이지,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편견없이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선생님 덕에, 세르비아는 또 한걸음 내 마음에 다가왔다.
2. 2020.2.17
그렇게 첫 레슨을 시작했다. 나랑 동갑인 선생님은 경력이 20년이 넘는 프로 연주자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교향악단에서 나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으며, 지금도 한달에 1주일 정도는 유럽 각 지역으로 공연을 다닌다고 한다. 서양인들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본인의 커리어와 자신의 일에 대해서 말할 때 자신감에 차 있는 모습은 참 매력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뭐 어쨌든, 그녀의 교수법은 작년 한국 선생님과 조금 달랐다. 소리를 내는 것 자체보다는 몸을 이완시키고, 단전에 힘을 주고 뇌에 새로운 자극을 주라는 등 언뜻 들으면 뉴에이지 명상 수업 같은 수업을 이어갔다. 그런데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경직되어 있는 나의 어깨를, 손목을, 팔꿈지를 이완시키고 몇 시간이고 연주를 해도 근육에 무리가 가지 않는 습관을 들이는 것에 대한 여러 번 강조를 했다. 어깨에 조금이라도 고통이 느껴지면 잘못된 것이라며.
첫 레슨은 만족스러웠다. 빨리 곡을 배우는 것보다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을 강조하는, 그래서 머리로 연주하는게 아니라 몸에 익혀야 한다는 것,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 배운 것이 좋았다. 가령 활을 쥐는 것을 잊으려 주먹을 쥐고 활을 잡고 손목이 아닌 팔꿈치로 무게를 누르는 것 등 말이다. 1시간의 수업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한국에서 50분 동안 몇 번이나 시간을 확인했던 기억과는 확실히 달랐다.
앞서 한번 밝힌 것처럼 세르비아는 구 공산시절 티토 정권의 정책으로 무료 음악 교육 덕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악기를 연주할 수 있거나 대중화되어 있다. 일, 이년이 지나서 주말 따뜻한 날에 노을을 보며 친구들과 함께 연주를 하거나, 연주를 감상하는 상상을 하면, 조금 짜릿하다. 상상이 이렇게 짜릿한데, 실제로 하는 스스로를 보면 얼마나 신날까. 왜이렇게 다를까. 한국에서 비올라를 배울 때도 언젠가 연주를 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즐기는 상상을 하긴 했으나 그렇게 짜릿하지 않았는데. 실현 가능성이 없어서 그랬을까.
아참,
그리고 선생님이 한국에서 내가 2만원도 안 주고 산 활이 너무 좋다고, 아니 정확히는 그 가격에 너무 좋다고 했다. 또다시 국뽕이 차오르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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