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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원 생활

[세르비아 생존기] 세르비아에선 뭘 먹나요? 세르비아 음식 1

by 여배 2020. 10. 26.

 

세르비아에 부임하고 나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J야 음식은 입에 좀 맞아?"이다. 개인적으로 음식, 음식문화 일반, 요식업계는 단순히 복수의 메뉴의 집합이 아닌 그 나라와 지역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뜻 이나라의 음식은 어떻다고 말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누군가 당신에게 한국음식은 어때? 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김치, 불고기, 비빕밥 등 몇가지 가장 유명한 음식 열거하고 말것인가? 아니면 한국음식은 매워! 라고 말할 것인가?

 

어쨋거나 세르비아도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나라고, 유럽에 위치한 덕(탓)에 국경이 매우 자주 바뀌었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외국의 침략을 많이 겪었기에 다양한 문화가 섞여 발전했다. 그렇기에 슬라브족의 문화, 헝가리제국의 문화, 오토만제국의 문화, 공산주의 문화가 뒤섞여 오늘의 세르비아 문화를 만들어냈으며 식문화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도 가장 자주 언급되는 '세르비아 음식'이라는 것이 존재하기에 오늘은 몇가지 대표적인 음식을 소개하려 한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여있고, 나머지 한면마저 북한, 더 나아가서 중국에 막혀있는 한국과 달리 유럽의 대다수 국가는 많은 '외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음식이 "우리 나라 음식이다"라고 말하기에 애매한 상황이 많이 벌어진다. 더욱이 앞서 언급한것처럼 수많은 전쟁으로 국경이 자주 바뀌었기 때문에, 어느 나라 음식이라기 보다 발칸 음식, 아드리아해 음식 등 지역 음식으로 지칭하는 것이 더욱 안전하다. 어쨋거나 이 지역, 이 국가에서 그들의 음식이라고 자주 일컬어지는 음식을 몇가지 뽑아보자면 아래와 같다. 

 

 

1. 아이바(Ajvar_구운파프리카 소스)

2. 카이마(Kajmak_치즈)

3. 체바피(Cevapi, 혹은 Cevapcici_ 손가락 모양의 간고기 바베큐)

4. 사르마(Sarma_양배추롤)

5. 플레스카비차(Pljeskavica_세르비아식 햄버거)

6. 숍스카 살라타(Sorpska salata_토마토, 치즈, 오이를 곁들인 샐러드)

7. 쿠푸스 살라타(Kupus salata_양배추 절임 샐러드)

8. 로슈틸리(Roštilj_바베큐)

 

 

고기를 사랑하는 세르비아인들의 최애 메뉴, 모듬 바베큐

 

 

적고 보니 메인 디쉬라고 할 수 있는 음식은 세개뿐인 듯 하다. 바로 체바피, 사르마, 플레스카비차, 그리고 로슈틸리다.  사실 체바피나 플레스카비차 모두 소, 돼지 고기등을 갈아서 만든 패티이기 때문에 대동소이하다. 기본적으로 간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데다, 세르비아의 고기들은 육향이 한국보다 쎄서 지금까지 경험한 간고기 요리들은 거부반응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지만 먹으면서 또 먹고 싶다는 생각이 딱히 들진 않았다. 기회가 되어 먹으러 가게 되면 별 거부감은 없지만 그렇다고 내 돈 들여 딱히 사먹고 싶진 않는 정도랄까?

 

사실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세르비아 음식들이 공통적으로 이런 부분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한국인이 처음 접할때 딱히 거부감이 들진 않지만, 그렇다고 다시 찾아서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세르비아는 여느 유럽에 비해 한국처럼 자영업자가 많은 편인데(통계 수치는 없고 나의 뇌피셜이긴 하지만) 그 수에 비해서 외식산업 자체가 아직 저개발 단계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인 식당에서 접할 수 있는 음식의 종류가 꽤 제한적이고, 유럽이라는 지리적인 이점에도 불구하고 이국 음식점을 그리 쉽게 찾기 힘들다. 딱 한국의 이삼십년 전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경양식"집으로 퉁쳐 서양식 음식을 팔거나, 특급 호텔 일식집에서 초장이 서빙되는 등의 촌극이 벌어졌던 한국의 모습이 이곳에서도 벌어진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테리어는 수준급이다. 하지만 떡진 밥에 어설프게 뭉친 마끼롤을 '스시'라는 이름으로 비싸게 파는 일식집이 소위 "트렌디"하고 "럭셔리"한 식당으로 분류되는 것이 이곳의 현실이다. 

 

어쨋거나 위에 열거한 세르비아 전통음식들의 공통점은 아직 상업화가 덜된 느낌이라는 것이다. 상업화의 척도는 "표준화"인데, 어느정도 가격을 지불하면 대충 예상되는 맛의 수준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이다.(물론, 아직 나는 충분한 경험이 없다. 하지만 동시에 이 점을 이 블로그에서 너무 많이 밝혀서 언급을 좀 줄일 생각이다.) 이 말을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면, 한국음식 중에 집집마다 다 맛이 다르기 때문에 표준적인 "맛"이 존재하지 않는 음식이 있을까? 십년, 십오년 전만해도 김치, 혹은 김치찌개정도가 가장 대표적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가정에서 김치를 직접 담갔고, 공장 김치를 쓰는 식당은 "제대로 된 집"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요즘 김치를 직접 담그는 집이 매우 드물 뿐더러 김치 산업이 매우 발전해서 이제는 굉장히 많은 기업들이 김치를 생산하여 각 가정으로 공급되고 있다. 반면 세르비아의 아이바, 카이바, 체바피, 사르마 모두 슈퍼에 공산품이 판매되고 있고, 음식점에서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아직까지 "home made"가 훨씬 뛰어난 품질이며, 반드시 home made를 경험해야 한다고 세르비아인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뒤집어 이야기 하면, 공산품을 팔긴 하지만 아직까지 이 전통 음식들을 많은 가정에서 직접 만들고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그래서 늘, 새로운 세르비아인들이 어떤 세르비아 음식이 맘에 드냐는 질문을 했을때 내가 무슨 답을 하든 "넌 아직 진짜 그 음식을 경험하지 못했어"라고 한다. 나도 진짜 그 음식을 경험하고 싶다. 하지만 반드시 2-30년 주부 생활을 한 주부가 있는 가정집에 초대되어야만 경험할 수 있는 음식이라면 그 품질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표준이 부재하기에 표준을 만들어나가는 외식산업의 발전가능성이 여전히 크다고 본다.

 

지난 9개월간 경험한 세르비아 음식을 소개하려다가 이상하게 샛길로 새어 세르비아 외식산업에 대해 이바구를 털어버렸다. 다음기회에는 조금 더 가볍게, 경험했던 식당과 음식을 소개하는 맛집 포스팅을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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