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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원 생활

[세르비아 생존기] 형님 글쎄 이번엔 제가 낸다니까요

by 여배 2020. 11. 17.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유럽을 강타하고 있는 covid19가, 세르비아에도 어김없이 찾아와서 일 확진자가 3천 명이 넘어 11.15 기준으로는 근 4천 명에 육박했다. 세르비아 주변 국가들, 가령 헝가리,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는 국가 폐쇄령을 시행했다. 계속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문서작업만 하다 보니 살아있는 세르비아 정보를 소개하기가 꽤 힘들게 되었다. 그래서 이주를 고민하다 드디어 찾게 된 소재가 바로 계산 문화이다.

 

보통 다른 국가를 방문할 때 팁 문화는 어떻게 되는지, 더치페이를 하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르비아는 팁 문화가 정착되어 있고, 더치페이는(엄밀히 말하면 분할 계산 관습) 없다.

 

1.

우선 팁 문화를 이야기해보자.

보통 총금액의 5%~10% 정도를 남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팁을 남기지 않는다고 해서 따라 나와 따지거나 하는 경우를 보지는 못했다. 타 유럽 국가는 물론 한국에 비해서 외식 물가가 저렴하기 때문에 10% 정도 팁을 더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부담되는 금액은 아니다.

 

 

2. 

계산 문화는 조금 더 재밌다. 결론적으로 세르비아의 식당 계산 문화는 한국과 매우 유사하다.

물론 더치페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린 학생들의 경우 패스트푸드 점에서 각자 계산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다만, 지난 10개월 동안의 경험상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웨이터가 계산서를 요구할 때 "따로 계산할 것인지"를 묻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 이따금씩 사무실 동료들끼리 한명이 계산하고 현금을 모아서 주는 경우는 있지만, 미국이나 독일에서 처럼 아예 식당 점원이 각자 따로 계산할 것인지를 묻는 경우를 경험하지 못했다. 계산서를 요구하면 항상 "카드로 계산할 것인지 현금으로 계산할 것인지"를 물을 뿐이다. 

 

그러니까 세르비아는 기본적으로 식사를 할때 누군가가 누군가를 대접하는 개념이 깔려있다. 오늘 점심 먹자고 한 사람이 보통 점심을 내는데, 이런 부분 역시 한국과 매우 닮았다. 이곳에서 알게 된 한 분은 자기는 그래도 벌이가 괜찮아서 친구들을 만나면 보통 자기가 계산을 하게 되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자기한테 신세 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친구들이 만남을 피해서 아쉽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매번 얻어먹기 미안해서 친구를 만나는 것을 자제하는 게 어디서 너무 많이 들어본 이야기가 아닌가?

 

단순히 식당에서 결제 시 더치페이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다는 점뿐 아니라, 한국과 매우 유사한 부분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계산할 때 서로 내겠다고 싸우는 것이다. 특히 저녁식사 자리에서 삼겹살집이나 호프집 카운터에서 서로 계산하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런데 세르비아에서도 종종 이런 일이 벌어진다. 물론 세르비아는 카운터에서 계산하는 일이 잘 없고 웨이터가 테이블에서 카드를 받아가거나 휴대용 계산기를 가져오는 점은 다르다. 하지만 종종 술 한두 잔 걸친 세르비아인들끼리 서로 계산하겠다고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도 한번 동료와 식사를 하고 결제를 하려는데 동료가 못하게 해서 웨이터에게 좀 강하게 어필한 적이 있다. 그때 그 웨이터는 "미안하지만 나는 세르비아 친구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라며 동료의 카드로 결제를 한 적이 있다. 그 웨이터에게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농담을 던지며 끝났지만 그러한 실랑이를 하는 것 자체가 한국을 떠올리게 해서 반가우면서도 낯선 기분이 들었던 경험이다. 

이미지 출처 : https://unsplash.com

흔히 세르비아인들은 자존심이 세다고 한다. 자존심이 세다는 말은 사실, 체면을 중시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한국은 사회인식의 변화 속도가 매우 빨라서 현재의 1,20대의 문화가 어떤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나는 선배가 후배의 밥을 사주는 게 당연하고, 식사를 제안한 사람이 한턱내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그리고 남자가 식사비용을 계산하는 게 더 멋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초, 중,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을 다녔다. 2020년 현재의 세르비아에 정확히 그런 문화가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세르비아인들은 내가 더 직급이 높거나, 남자거나, 호스트라면 마땅히 계산을 하고 부족함 없이 대접하는 것이 스스로의 체면을 지키는 중요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세르비아에서 지내면서 발견하는 한국과 비슷한 점은 사실 대부분 개도국의 문화가 대부분이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시민의식이 성숙하기 전 과도기 단계에 형성되는 많은 문화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기회가 되면 더 다루겠지만 여성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문화, 앞서 언급한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 위계가 뚜렷한 문화 등 비단 세르비아와 한국 뿐 아니라 대부분의 개도국에서 드러나는 사회의 이면이다. 이것이 한국과 비슷한 관습을 발견하는 것이 비단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오늘은 세르비아의 외식 계산 문화를 알아보았다. 해당 관습을 통해 보이는 것,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에 잠깐 적어보았는데, 적다보니 한국에서 "오늘 내가 계산할게"하던 친구들이 생각나서 문득 한국이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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