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재원 생활

[세르비아 생존기] 동료애는 만국공통인가

by 여배 2020. 3. 26.

온 유럽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난리다. 21세기에 들어서고, 메르스니 사스니 이따금씩 지역적으로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들이 유행했지만 이렇게 전세계적인 판데믹을 경험한 것은 꽤 오랜만이다. 20세기 초 스페인 독감 이후 거의 백년만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곳 세르비아도 예외가 없다. 얼마전 공유한 것처럼 세르비아 정부도 하루가 멀다하고 긴급 대책을 세우고 있고, 3월 6일 첫 확진자 발생 이후로 하루에 30명도 검사를 채 못하는데 확진자가 400명에 육박한다. 

 

이탈리아, 스페인, 스위스, 독일 등 확진자가 만명을 훌쩍 넘긴 나라는 물론이고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한국보다 훨씬 강도높은 통제정책을 운영하고 있고, 대부분의 기업들이 재택근무로 전환했다. 사실 말이 재택 근무이지, 나처럼 바이어를 찾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곤란하다. 새로운 구매처를 뚫고 기술적인 이야기를 이어가야하는데, 면대면 비즈니스가 기본인 이 나라에서 재택근무 때문에 바이어와 연락을 주고 받는 것이 쉽지 않다. 

 

한국처럼 1인 1스마트폰, 1인 1노트북이 자연스러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선뜻 와닿지 않겠지만, 이 곳은 대부분의 학교가 온라인 강의를 할 인프라가 없을 뿐더러, 대부분의 직장인, 학생들은 재택근무를 할 최소한의 인프라, 즉 노트북이 없다. 앱에서 터치 몇번으로 대부분의 은행업무를 볼 수 있는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계좌이체 한건 한건을 진행할 수 있다. 

 

어쨋든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우리 지사는 요즘이 가장 바쁘다. 이러한 위급한 순간에 보고용 자료만 줄창 요구하는 본사의 지나친 요구는 일단 논외로 하고, 세르비아 보건부, 몬테네그로 정부, 코소보 정부의 긴급 요청에 따라 한국의 의료기기를 조달하는데 전력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긴급"이라는 것이 골든 타임을 놓치면 피로감이 쌓이기 마련이다. 우리는 벌써 3주째 긴급 조달에 서포트를 하고 있다. 그러나 유의미한 성과를 내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 양쪽의 중간에서 메신저의 역할을 하는 것은 참 필요하지만 비효율적이고 에너지 소모가 크다. 더구나 그동안 콧대가 높던 유럽의 각 국가, 그리고 전세계의 큰손 미국이 한국의 의료기기 수급에 뛰어들면서 상황은 더욱 긴급해졌다. 3000대가 필요한데 3대만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밤이고 낮이고 한국과 세르비아 사이에서 전화와 이메일이 불이난다. 

 

"우리 나라"를 돕기 위해 근무시간도 잊어가며 일하는 동료들은 가끔 정신적으로 힘겨워 한다. 긴급이라고 하면서 빠른 결정을 내리지 않는 정부 관계자들, 제대로된 정보를 주지 않는 유통사들에 대해 화를 내기도, 미국이 이제 한국의 모든 의료기기를 싹 쓸어가버리면 우리 같이 가난한 나라는 이제 치료도 못받고 죽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암담한 미래에 절망하기도 한다. 나역시도 2주가 넘어가는 긴급 상황에 심신이 지쳐가고 신경은 날카로워져 가고 있다. 그래서 사무실에서 욕도 늘고, 전화기가 울릴 때마다 한숨을 두어번 쉬고 받는다. 내 메일함의 이메일은 자고 일어나면 몇십건 몇백건이 쌓여있다. 본사에서 오는 요청 공문은 볼 틈이 없다. 이렇게 점점 심신이 고갈되어 가고 있을때, 역시나 지탱해 주는것은 동료애 뿐이다. 

 

서로 무너져 가는 멘탈을 부여잡아준다. 엊그제는 동료 한명이 자리에 비타민을 놓았으니 꼭 챙겨먹으라며, 지금 니가 쓰러지면 우리는 희망이 없다고 북돋아 준다. 내가 이들보다 나은거야 한국어 능력 뿐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 한국어 능력이 절실하다. 자신들의 요청을 한국어로 포장해서 절실함을 담아주길 원한다. 그 마음을 알기에 나는 한번 만나보지 못한 한국 제조사 해외영업 담당자들에게 말이 길어진다. 

 

뭐, 솔직히 이따금씩 느끼는 동료애가 흐트러져 가는 멘탈을 잠시 잡아줄 뿐이지, 상황을 개선시켜준다거나 나를 회복시켜 줄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이제 슬슬 모두가 지쳐가는 가운데, 이 시국이 더 장기화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앞이 깜깜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