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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원 생활

[세르비아 생존기] 봄이 왔고, 눈도 왔다.

by 여배 2020. 3. 25.

지난주 토요일의 낮 기온은 영상 23도였다. COVID-19 덕에 길에 사람은 많이 없었지만, 그래도 출근(토요일이지만..) 길에 반팔을 입은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어제 저녁부터 눈이 내렸다. 일요일 저녁부터 조금 쌀쌀해지긴 했는데, 그렇다고 이틀 만에 눈이 내릴 줄이야. 게다가 이 눈이, 한국에서도 봄에 종종 만나는 감질맛 나는 1시간짜리 뽀송한 눈이 아니다. 어제 저녁부터 오늘 오후 늦게까지 거의 하루 종일 내렸고, 적설량이 근 20cm가 되었다. 아침에 차에 쌓여 내가 치운 눈만 10cm는 족히 되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CoronaVirus로 바쁜 하루를 보냈지만 오늘만큼은 코로나바이러스에서 벗어나 생경스러운 경험을 기록하고 싶었다. 물론 한국이었으면 눈이왔다 어쨋다 하며 이 사람 저 사람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친구들과 연락해서 급하게 약속을 잡아 따뜻한 정종에 회를 먹었을 것이다. 오늘도 바빠서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는데, 막상 기록을 하면서 생각해보니 그렇다. 한국이었으면 또 술 한잔 할 좋은 핑곗거리가 되었을 텐데. 

 

나는 지난 10년을 내가 술을 되게 좋아하는 사람인줄 알았다. 특별히 약속이 없어서 술을 마시고, 약속이 있으면 당연히 마시고, 갖은 이유를 대면서 다양한 술을 참 다양하게도 마셨다. 이 곳 세르비아에서 근무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한국보다 다양한 와인을 많이 마실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그리고 첫 이주는 실제로 동료들이 추천한 세르비아 와인 여러 개를 테스트한답시고 집에서 홀짝홀짝 마셨다. 그런데 상황도 상황이지만, 마트에서 술이 잘 손에 가질 않는다. 지난 한 달간 집에서 마신 술은 흑맥주 3병, 선물 받은 화이트 와인 1병이 전부다. 

 

생각해보니 세르비아에 오자마자 의욕적으로 와인을 마셨던 것은, 곧 놀러올 친구들에게 엄선된 와인을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통금령 및 식당 폐쇄 조치를 내리기 한참 전부터 식당에 가지 않고 그냥 집에서 끼니를 때웠던 이유도, 한국의 상황이 한창 안 좋아지면서 친구들이 올해 안으로 오기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인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혼자 먹는 술은 즐기지 않는 것 같다. 함께 즐길 사람이 꼭 필요하다. 그렇다고 술이 아닌 술자리만을 좋아한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확실히 혼술은 술을 즐긴 것이 아니라 허전함을 달래는 방법이었을 뿐인 것이다. 

 

날씨 이야기로 시작해서 엉뚱한 이야기까지 흘러왔는데,

날이 이러니까 레드와인이 마시고 싶긴하다. 세르비아 와인은 대체로 화이트 와인이 강세인 게 이럴 때 좀 아쉽다. 하지만 봄 여름엔 아주 아주 행복할 거라 믿는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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