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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원 생활

2019년 발령, 그리고 준비 ; 세르비아

by 여배 2020. 3. 17.

2019년 11월 28일, 나는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로 주재원 파견 발령을 받았다.

2020년 2월 1일부터 3년간 나는 베오그라드에서 근무하게 된다.

 

 

1. 과정

 

내가 다니는 회사는 인원이 절반은 국내 본사 근무, 절반은 해외 지사에서 근무하는, 주재원 파견이 일상인 회사다. 일 년에 여름에 한번 겨울에 한번 이렇게 두 번씩 정기 파견 인사 발령이 있다. 발령이 나기 2-3주 전 파견 신청을 받고 상담 및 조정?을 거쳐 발령이 난다. 발령이 난 직후 든 생각은 딱히 없었다. 단지 세르비아가 어떤 곳인지 잘 모르고, 무엇보다 내가 일하게 될 지사에 본사 파견 주재원이 단 두 명이라는 점이 걸렸다. 본사 및 여러 기관, 기업에서 요청하는 수많은 업무를 본사 파견 직원이 검토 후 현지 직원들에게 분배하거나 직접 하는 것이 내가 속한 조직 산하 해외 지사의 통상 업무 프로세스인데, 주재원이 두 명이라는 이야기는 지사장 한 명은 대외 업무를 하고 한 명이 오롯이 모든 것을 다 해야 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규모가 큰 지사는 큰 지사대로 고충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이 적은 곳은 적은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해야 하므로 사실 사내에서 인기가 없다. 더구나 나의 성격과 업무 스타일이 멀티태스킹에 잘 맞지 않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2. 주변의 반응

 

어쨋거나 발령은 났고, 엄청난 오지는 피했다는 생각에서인지 다들 축하를 한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세르비아란, 코소보 전쟁의 나라이자 박지성의 옛 팀 동료 케즈만의 나라, 혹은 조코비치의 나라라는 인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A : "어 거기 발칸 맞지? 그래도 유럽이네~"

나 : "유럽이긴 하죠. 비 EU 비 솅겐이지만 유럽이긴 하죠" 

B : "그 1차대전 발발한 거기 아니야~ 유서 깊은 곳이네"

나 : "거긴 보스니아 사라예보인데요"

C : " 그 체코랑 분리된 곳! 프라하 가까워서 좋겠네"

나 : "거긴 슬로바키아인데요"

D : "aa씨, 슬라예보 지젝이라고 아나? 그 철학자가 거기 출신인데 말이야"

나 : "슬로베니아 출신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 사람들을 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도 모르니까. 사실 위의 대화에서 나의 대답은 내가 대화 후 조사해서 각색한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까지의 인사 자리는 세르비아를 사라예보,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등등으로 헷갈려하는 사람들에게 나도 설명하다 헷갈리다 끝나기 일쑤였다.  슬로베니아든 세르비아이든 주변에선 가족 없이 혼자 나가는 것에 대한 걱정들이 많다.

 

3. 걱정

 

하지만 나는 나의 생활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이 별로 없다. 한인마트, 한인식당, 더더군다나 한인교회가 없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한국과의 교류가 얼마나 없으며, 한국 커뮤니티가 얼마나 작은 지를 가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한국에서 누렸던 것들을 누리지 못함에 대해서는 기대치를 아예 0으로 만들어놨기 때문에, 그리 크게 실망할 것도 없을 것 같다. 더구나 예전 미국에서 교환학생을 하면서 삼시세끼 한국음식을 해 먹은 것에 대한 후회가 많이 남기 때문에, 삼시세끼 현지식을 먹는 것도 언제 해보랴 싶은 마음이다. 더구나 나는 미술관, 콘서트홀이 있다면 다른 것은 그런대로 참을 수 있다. 영화야 집에서 넷플릭스로 해결할 것이고, 내가 한국에서도 그렇게 유흥을 즐기진 않기 때문이다. 강남에 클럽이 즐비하면 무엇하나, 내가 가질 않는데.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한국 내에서도 서울을 벗어나서 지내게 되면 "아이고 심심해서 어떻게"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서울에서 살면서 오락거리 때문에 심심하지 않게 살았던 것은 아니다. 2-30분 산책할 만한 거리가 있고, 서점이나 미술관이 있다면, 제한된 범위 내에서 그럭저럭 살아가는 게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너무 쉽게 바뀌는 환경에 대해 지레 겁을 먹거나, 불평을 하는 경향이 있다. 

 

아 한가지,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라서 3년 동안 "회"는 단념하라는 전임자의 말을 들었다. 단지 그게 걱정된다. 회 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은 생활적인 부분에서 크게 걱정되는 부분이다. 과연 내가 회가 없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나는 오히려 업무적인 부분에 대해서 더 걱정이 앞섰다. 부족한 영어로 현지직원분들과 충분히 소통을 잘할 수 있을지, 경험이 부족한 내가 관리업무를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지, 현지 직원분들의 고충을 충분히 듣고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을지, 나의 상사와 엇박자가 났을 때, 내가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등의 실무적인 걱정 말이다. 

 

3. 기대와 인상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아는 정보로는 1)어쨋거나 구 유고연방의 중심지였던 베오그라드이고, 2)EU 가입을 열망하고 있으나 아직은 경제력이나 인프라가 부족하고, 3)1인당 총 기소 지율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임에도 적어도 수도인 베오그라드 치안은 괜찮은 편이다. 4)그리고 과일과 고기, 인건비가 저렴하다. 정도의 정보가 다다. 종합하면 애매한 포지션의 개발 도상 국가 라는 인상이다.

과거 대국의 향수가 있지만 현실은 주변 서유럽의 성장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자존심에 금이 가 있으며, 내전과 인종청소의 공포를 겪은 이들이 아직 많이 살아 있는 나라. 더욱이 한국과 이렇다 할 교류가 있지 않은 나라.

조사는 하되 선입견은 갖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조코비치의 나라로 테니스가 국민 스포츠라길래 매형의 도움을 받아 테니스 라켓도 샀다.

 

사실 세르비아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그 자체보다는 학생이나 관광객, 봉사자가 아닌 직장인으로서 월급을 받으며 해외에 체류한 적은 처음이기에 그 사실 자체에서 고무되는 점이 있다. 이상과 현실은 당연히 다르겠지만, "해외에서 주재원 생활을 한다"는 것이 주는 막연한 역동성과 호연지기가 있지 않은가. 바람이라면 3년 내내 사무실에서 모니터와 씨름만 하다가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현장 정보를 많이 쌓는 것이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2019년 12월에 쓴 글을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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