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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원 생활

[세르비아 생존기] COVID-19에 대처하는 두 국민의 차이

by 여배 2020. 3. 19.

 

세르비아로 날아온 것이 설 연휴 때였으니까 약 두 달 전이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 확진자가 막 나오기 시작한 상황이어서, 위기감이 고조되긴 했지만 아직 사망자도 나오기 전이었고, 무엇보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신종 바이러스가 우한에서 시작되었는데 한국에까지 퍼졌다. 딱 그 정도였다. 세르비아는 물론 유럽 그 어느냐라도 신경을 쓰지 않았고. 이스탄불을 거쳐 세르비아로 오는 동안 마스크를 쓰는 사람 단 한 명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신천지 사건등이 터지고 확진자가 급증하고, 사망자가 늘어났다. 여기저기서 불안과 동요가 있었다. 무슨 일이든 일어나면 들끓는 우리 민족의 특성상 하루 종일 코로나바이러스로 난리였고, 그 덕에 일주일에도 관련 공문 및 요청을 수십 건씩 처리해 나갔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 이곳까지 전파가 되었다. 한국이 거쳤던 과정을 이곳도 겪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한국은 분노에 차 있었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분노. 중국인을 막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 신천지에 대한 분노. 그런데 이곳은 절망과 무기력함이 가득차 있다. 물론 코로나에 대한 정보가 비교적 적을 때 수가 늘어난 우리와, 전 세계적인 pandemic으로 규정된 이후 유행이 시작된 시간차가 주는 무게감이 다르겠지만, 어쨌거나 우리나라는 정부든 누구든 목소리를 높이면 만족할 수준은 아니더라도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학습되었고, 실제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이곳은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없다. 외부의 도움을 기다린다.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대처하기가 매우 힘들다. 제조기반이 약한 나라의 맹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다. 다행히 먹거리는 풍족해서 패닉에 빠지지는 않은 듯 하다. 국가비상사태로 지정된 지 일주일이 되었는데, 아직까지 몇 명이 검사를 받았는지 조차 알 수 없다. 공식적으로 확진자를 공개하지만, 누구도 그 정보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제 아시아인을 특정해서 경계하는게 의미 없어졌기에, 아시안이라서가 아니라, 도시 전반에 깔린 무기력과 공포를 지켜보며 미세한 고립감을 느낀다. 한국에선 마스크를 끼지 않은 채 거리를 다니면 눈총을 준다고 한다. 이곳은 보건마스크(N95이상)는 커녕 수술용 마스크도 씨가 마른 데다 국가 비상사태 발동으로 인해 특별한 사유 없이는 길에도 나오면 안 된다. 전쟁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이 나라에 또다시 무기력이 퍼지고 있다.

 

우리 지사의 현지직원들은 슬픔에 잠겨 있다. 땅으로 꺼져가는 나라를 지켜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에 절망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내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친구로서, 관리자로서 내가 무엇을 해야 그들에게 도움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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